한국 음식이 식당의 한 그릇이 되기 전에는 어떤 모습일까. 경동시장·청량리에서는 커다란 자루에 담긴 고추, 줄로 묶은 다시마, 흙빛 뿌리와 말린 꽃을 만나게 된다. 완성된 길거리 음식을 사 먹는 재미에 더해, 서울의 식탁을 채우는 재료가 어떻게 거래되는지 구경하는 동네다. 한약재에 관심이 없더라도 음식과 시장 풍경을 좋아한다면 충분히 들를 이유가 있다.
처음에는 경동시장과 서울약령시, 청량리 주변 시장을 모두 한 건물로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는 여러 시장과 상가, 골목이 맞닿아 있는 넓은 상권이다. 한 곳의 입구를 찾았다고 전체 동선을 파악한 것은 아니므로, 제기동역에서 출발해 약재 골목과 경동시장을 보고 청량리 방향으로 이동하는 식으로 큰 방향을 정해두면 편하다.
이곳은 관광객만을 위한 시장이 아니다. 장을 보는 주민과 물건을 나르는 상인, 납품 차량이 함께 움직인다. 예쁜 가게 몇 곳을 빠르게 찍고 나오는 일정보다는 관심 있는 재료를 살펴보고 식사나 차 한 잔을 곁들이는 반나절에 잘 맞는다. 쇼핑이 목적이 아니라면 무거운 짐 없이 가볍게 출발하자.
경동시장과 서울약령시를 먼저 보려면 지하철 1호선 제기동역 2번 출구가 시작점을 잡기 쉽다. 서울약령시한의약박물관을 함께 볼 계획이라면 서울한방진흥센터를 지도에 저장해두자. 시장 전체를 가리키는 큰 표식보다 첫 목적지의 이름을 알고 움직이는 것이 골목에서 덜 헤매는 방법이다.
청량리 쪽에서 출발할 수도 있다. 청량리역 1번 출구 방향에는 청과물시장 등 여러 시장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다만 전철과 철도 환승 동선이 긴 역이므로, 도착한 승강장에서 지상까지 나오는 시간도 생각하자. 경동시장 본관, 서울약령시, 청량리청과물시장은 가까운 상권 안에 있어도 같은 건물이나 같은 출입구는 아니다.
시장 안에서는 지붕이 있는 통로와 야외 골목을 번갈아 걷게 된다. 비 오는 날에도 전체 구간이 실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작은 우산과 미끄럽지 않은 신발이 편하며, 캐리어나 큰 유모차는 좁은 통로와 물건을 쌓아놓은 구간에서 이동이 번거로울 수 있다. 이동에 제약이 있다면 보고 싶은 상가부터 골라 접근 경로를 확인하자.
점포별로 문을 여닫는 시간이 달라 시장 전체를 하나의 영업시간으로 안내하기는 어렵다. 처음 방문한다면 낮 시간에 식재료 골목을 먼저 보고, 쉬는 장소를 뒤에 두는 편이 동선을 짜기 좋다. 카페가 늦게까지 운영된다고 주변 도매 점포도 같은 시간에 열려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는 말자.
서울약령시 일대에서는 말린 잎과 꽃, 열매와 뿌리가 큰 봉지나 바구니에 담겨 있다. 비슷한 갈색 재료라도 모양과 손질 방식이 서로 다르다. 처음부터 효능을 외우려 하기보다 표지에 적힌 한글 이름과 실제 모양을 연결해보자. 차로 쓰이는 재료인지, 음식에 넣는 재료인지, 한약재인지 질문하면 구경의 기준이 생긴다.
경동시장에서는 인삼뿐 아니라 더덕과 도라지 같은 뿌리 식재료도 볼 수 있다. 모든 뿌리를 인삼으로 부르거나 약재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한국에서는 같은 식물 이름이 나물이나 반찬, 차, 전통 의약 문화 등 서로 다른 맥락에서 등장한다. 어떤 용도로 판매하는지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이 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작은 배움이다.
구매하고 싶다면 원하는 양을 먼저 말하고 무게와 가격을 함께 확인하자. 큰 자루 하나가 진열 단위일 뿐 소량 판매가 가능한 경우도 있고, 반대로 여행자가 쓰기에는 양이 많은 상품도 있다. 원산지와 손질 상태, 보관 방법이 다른 물건을 겉모양만으로 단순 비교하지 않는 편이 좋다. 낯선 약재를 기념품처럼 사서 임의로 복용하는 일은 피하자.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서울한방진흥센터 안의 서울약령시한의약박물관을 연결할 수 있다. 시장의 물건을 한의약 문화의 배경과 함께 이해하는 실내 관람이다. 박물관 관람과 족욕 같은 체험은 이용 조건이 구분되므로 하나의 입장으로 모든 프로그램을 이용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2026-10-12 확인한 센터 운영 안내를 기준으로 관람시간·휴관일·체험 예약을 방문 전에 살펴보자.
작은 생선과 새우, 김과 각종 마른 해산물이 모인 구역에서는 바다에서 온 재료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생선 이름을 모두 알지 못해도 크기와 건조 정도, 포장 방식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같은 멸치처럼 보여도 반찬용인지 국물을 내는 용도인지에 따라 고르는 기준이 달라질 수 있으니, 요리에 쓸 생각이라면 만들 음식부터 이야기해보자.
건어물 가게의 물건은 완성된 간식과 조리용 재료가 섞여 있다. 진열돼 있다고 모두 바로 집어 먹는 시식용은 아니며, 먹을 수 있는지와 조리가 필요한지를 구분해야 한다. 숙소에 주방이 없는 여행자라면 사용법을 모르는 대용량 재료보다 포장과 보관이 간편한 소량 상품을 찾아보는 편이 현실적이다.
다시마는 넓고 납작한 형태와 짙은 색 때문에 다른 건어물 사이에서도 알아보기 쉽다. 식당에서 완성된 국물만 맛봤다면, 이런 재료가 한식의 바탕에 쓰인다는 사실을 연결해볼 수 있다. 시장 산책 뒤 국수나 국물 요리를 먹으면 그릇 안의 맛을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건어물 구역에는 포대와 상자가 많고 손수레가 오가기도 한다. 통로 가운데 멈추기보다는 가게 앞의 여유 있는 자리에서 살펴보자. 가까이 촬영하고 싶을 때는 먼저 상인에게 물어보면 된다. 사람보다 물건의 색과 질감, 진열 방식에 집중해도 이 시장다운 장면을 충분히 담을 수 있다.
짚으로 묶인 덩어리를 처음 보면 무엇에 쓰는지 궁금할 수 있다. 메주는 콩을 삶아 찧고 형태를 잡아 발효시키는 전통 장의 재료다. 식당에서 만나는 된장이나 간장이 처음부터 병이나 통에 담긴 상품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장 담그기 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모양과 말린 상태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메주를 여행 중 곧바로 먹는 음식으로 오해하지는 말자. 구입 여부와 별개로, 식재료가 발효와 숙성의 과정을 거쳐 식탁으로 이어진다는 맥락을 알아두면 된다. 더 깊이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국립민속박물관의 메주 소개가 도움이 된다.
붉은 고춧가루와 말린 고추가 모인 가게는 색의 대비가 선명하다. 한국 음식의 붉은 양념이 한 가지 제품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살 때는 맵기와 굵기, 쓰려는 음식, 필요한 양을 알려주고 고르자. 김치를 담그려는 사람과 한두 번 요리할 여행자가 같은 분량을 살 필요는 없다.
가게 앞의 가격표나 오래된 시장 소개를 현재 가격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것이 좋다. 판매 단위와 원산지에 따라 비교 대상이 달라지고 시세도 바뀐다. 흥정을 시장 방문의 필수 체험으로 여기기보다는 가격과 양을 먼저 확인하고 결정하자. 촬영과 구경만 해도 충분한 방문이 될 수 있다.
시장 식사와 옛 극장 카페로 마무리하기
시장 산책 중 배가 고프다면 경동시장 식당가나 청량리 쪽 먹거리 골목에서 한 끼를 고를 수 있다. 음식점이 모인 곳이라도 모든 가게의 메뉴와 주문 방식이 같지는 않다. 메뉴판의 1인분 표시와 최소 주문량, 자리에서 먹는지 포장하는지를 확인하면 낯선 시장에서도 주문이 수월하다. 넓은 시장을 끝까지 걷고 돌아오지 않도록 식사할 방향을 중간에 정해두자.
공간의 변화에 관심이 있다면 스타벅스 경동1960점을 들러볼 수 있다. 옛 경동극장을 활용한 카페로, 시장 안에서 전혀 다른 규모의 실내를 만나는 경험이 된다. 동대문구의 경동시장 안내에서 본관과 신관의 구성을 미리 보면 카페와 식당가를 찾는 데 도움이 된다. 좌석 확보나 특정 체험까지 보장되는 일정으로 계획할 필요는 없다.
카페만을 목적지로 삼아도 되지만, 아래층과 주변 골목을 조금이라도 걸어보면 이 건물이 놓인 동네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오래된 식재료 거래와 새로운 휴식 공간이 같은 상권에 겹쳐 있다는 점이 경동시장만의 여행 소재다. 반대로 재료 구경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유명 카페를 기다리느라 시장 산책 시간을 줄이지 않아도 된다.
돌아갈 때는 출발역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현재 위치와 다음 목적지를 함께 보자. 제기동역과 청량리역 중 편한 쪽을 고르면 된다. 약재 이름 하나, 다시마 한 묶음, 메주의 쓰임처럼 새롭게 알게 된 재료가 남는다면 이 시장을 충분히 즐긴 셈이다. 서울의 음식 여행을 식당 밖으로 넓혀보고 싶은 사람에게 잘 맞는 코스다.